TOUR 맑은 공기와 맞닿은 펜션에서 행복한 아침을...
하조대해수욕장&낙산사
하조대해수욕장은 양양군의 남쪽 12km거리에, 울창한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1.5km의모래밭과 수심 0.5-1.5m의 느린 경사를 지닌 해수욕장이다. 인근의 빽빽한 소나무숲속에 조선초기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고려 말에 은거하며 지냈다고 하는 하조대 정자가 있으며 주위 경치도 빼어나 많은 피서객이 몰리는 곳이다.

낙산사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낙산사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탁장사마을&어성전명주사
어성전(漁成田)리는 ‘물이 깊어 고기가 많고 주위의 산은 성과 같으며 밭이 기름져 가히 부모를 모시고 처자를 기르기에 적합한 골이다’고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탁장사 유래는 조선조 말기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하여 전국 각처에서 목재를 모아들을때 지금의 양양군과 강릉시 경계지점의 나무를 서로 차지하려고 내기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베어서 경계를 넘어 쓰러지는 쪽의 소유로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경계에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질 수 있는 사람의 소유로 하기로하여 당시 강릉 연곡에 힘세기로 이름난 권장사가 먼저 지고 일어서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자 서면 소래(현 양양군 서면 송천리)에 사는 탁구삼씨가 이 나무를 지고 서림까지 넘어오자 소래 마을에서는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현재 아담한 사찰로 깊은 산중에 둥지를 틀고 있지만 옛날에는 강원도에서 건봉사 다음으로 큰절이었다고 하나, 1861년 명주사와 원통암 등 부속암자까지 불타는 등 수차례의 화재를 걲었고, 이후 6.25 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되는 모진 풍파를 걲었습니다. 이렇듯 이곳은 만고풍상을 겪은 사찰로 현재는 예전의 화려했던 대찰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 64호로 지정된 동종과 절아래 있는 부도군이 남아 있어 이름난 사찰이었으며 수 많은 학승들을 배출했던 전당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법수치계곡&남애일출
강릉과 양양 남북으로 길게 굽이쳐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 최상류, 어성천 청정수계 를 따라가면 오대산 북쪽의 법수치계곡을 만난다. 아직도 포장도로 하나 변변치 못해 양양읍내에 나가려면 버스가 들어오는 아래 동네까지 산길 20여리를 걸어나와야 한다. 양양군지에 따르면 계곡물이 마치 불가의 법수처럼 이곳에서 뿜어져나와 남대천 본줄 기의 시초가 됐다고 해서 법수치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다. 이제는 문화재로 지정된곳 에 가야 볼 수 있는 화전민가옥인 굴피집도 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엔 흔한 정경이었 다. <계곡물이 마치 불가의 법수처럼 이곳에서 뿜어져나와 남대천 본 줄기의 시초가 됐다고 해서 법수치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다>

남애항은 주문진 북쪽 6Km에 위치하고 있다. 항구 주변에 남애해수욕장과 매호라는 석호가 있어 붕어와 잉어 등 민물낚시는 물론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으며, 동해에서 잡은 싱싱한 회도 맛볼 수 있다. 특히 남해항은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항구에는 방파제와 등대,커다란 괴암들이 많아 서 일출 광경 또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장엄하고 화려하다. 그래서 전국 에서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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